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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시

발에 대한 묵상 / 정호승

by 존글지기 201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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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발을 씻을 수 있는
기쁜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길 없는 길을 허둥지둥 걸어오는 동안
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숯불 위를 맨발로 걷기도 하고
절벽의 얼음 위를 허겁지겁 뛰어오기도 한
발의 수고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발에게 감사드립니다
굵은 핏줄이 툭 불거진 고단한 발등과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깊숙이 허리 굽혀 입을 맞춥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가슴을 짓밟지 않도록 해주셔서
결코 가서는 안되는 길을 혼자 걸어가도
언제나 아버지처럼 함께 걸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싸락눈 아프게 내리던 날
가난한 고향의 집을 나설 때
꽁꽁 언 채로 묵묵히 나를 따라오던 당신을 오늘 기억합니다
서울역에는 아직도 가난의 발들이 밤기차를 타고 내리고
신발 없는 발들이 남대문 밤거리를 서성거리지만
오늘 밤 저는 당신을 껴안고 감사히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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