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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시

멍, 멍, 멍 / 정익진

by 존글지기 201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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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멍, 멍 / 정익진 



멍, 멍, 멍 

바람 든 내머리 

돌 속의 그림자를 보고 앞발로 툭, 건드려본다. 

텅 빈 버스의 천장에서 흔들리는 손잡이. 공휴일, 입술 꽉다문 상가의 셔텨 

멍, 멍, 멍 

퍽, 탁자 위에서 떨어지는 전화번호부 

그 두터운 갈피 속에서 개미떼처럼 쏟아져나오는 까만 이름들, 

팔딱거리는 이빨들, 말의 핵분열로 부글거리는 목구멍들을 꿰매고 싶다. 

멍, 멍, 멍, 

전자수첩 열면, 벌떼처럼 코를 쏘는 1억, 30억, 50억… 

의 숫자들의 바늘. 그리고 별들의 침묵은 반짝이지 않는 것이다. 

밖을 보아도 밖이 보이지 않고, 안을 보아도 안이 보이지 않는다… 

등의 불필요한 메모들. 

멍, 멍, 멍 

전화벨이 울린다. 쩌르릉, 쩌르릉, 쩌르릉, 淫毛가 일어선다.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말이 없고) 

싱크대의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물소리, 여보세요? (역시 말 없고) 

추억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Rose, No.5의 체취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온다. 

여보세요? (계속 말 없고)*“흐트러진 침대”의 무대가 안개 속에서 

그 모습 드러낸다. 여보세요? (수화기 떨어지는 소리) 

손 안의 따뜻한 체온과 몸의 곡선이 그려지는 

그 공간이 그립다. 

텅 비어가는 내 가슴. 텅, 텅,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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