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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by 존글지기 201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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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라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날 스므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였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이 피었다 시드는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 갈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깍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 가는
저녁 강물 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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