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이야기

사귄지 몇 달인데 손 한번 못잡았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20.
반응형

사귄지 몇 달인데 손 한번 못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못난 손

 

 

은주 씨는 노래를 아주 잘합니다. 내로라 하는 유명가수 뺨칠 정도이죠. 지난 번에는 모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당당히 본선을 통과하기도 하였습니다. 트로트를 구성지게 불러제끼는 은주 씨가 얼마나 예쁘고 매력적인지 읍내 총각들의 가슴은 콩콩콩 나자빠질 정도였습니다.

 

! 그런 끼가 있는 걸로 보아서 별로 좋지 않는 선입견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혹시나 허영에 들떠서 맹목적으로 연예인 생활을 꿈꾸지 않느냐구요? 절대로 아닙니다. 은주 씨는 연로하신 홀아버지와 고등학교 다니는 동생 둘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요즘에 보기 드믄 참한 처녀 가장입니다.

 

낮에는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일이 끝나는 대로 호프집으로 출근해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새벽빛을 보고서야 집으로 퇴근하는 은주 씨가 곧바로 곤한 잠으로 빠져버린다면 어쩌면 사치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옷이며 도시락을 챙기는 등 돌아가신 엄마노릇도 하여야 하구요. 자질구레한 집안 일까지 하노라면 잠이라야 고작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합니다. 아침이면 또 고단한 생활이 매정하게 은주 씨를 끌어당기고 있을테니까요.

 

그렇다고 법무사에서 자기 일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꾸벅꾸벅 조는 일로 사무실 동료들이 눈살을 찌뿌리는 일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깔끔 떠는 성격 탓에 사무실은 먼지 한 톨 머무르지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윤이 납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살림살이를 도맡아 해온 그녀의 손 묻은 부지런한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왜 있죠? 사람을 만나다보면 처음에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는데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매력이 솔솔 넘쳐나는 사람 있잖아요? 맞습니다. 바로 은주 씨가 그런 사람입니다.

 

비싼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수수하고 깔끔한 옷매무새하며, 스물네 살 꽃다운 아가씨답지 않는 엷은 화장기가 묘한 순백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박꽃처럼 활짝 웃는 그녀의 웃음 띤 얼굴 때문입니다. 힘들고 피곤한 그녀의 일상을 덮어버리는 그 웃음과 살짝 팬 보조개를 보노라면 그녀가 그토록 힘들게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처녀가장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은주 씨에게도 늦사랑이 찾아들었습니다. 훤칠하고 잘 생긴 현수 씨가 사랑을 고백해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현수 씨의 사랑 고백이 장난이겠지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결코 그냥 한 번 찔러나 보는 장난 같은 사랑이 아니란 것을 알고 은주 씨도 사랑의 맞불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는 데이트를 자주 하였습니다.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은주 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축하의 말과 함께 부러움의 눈길을 던지곤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현수 씨가 읍내에서 내로라 하는 부잣집 아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은주 씨의 곤곤한 생활의 더께를 던져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은주 씨는 절대로 현수 씨의 집안 내력을 보고 사랑을 하였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다 도회지로 떠나가고 미끈한 도시의 생활에 젖어갈 때 은주 씨는 주어진 자기의 삶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은주 씨가 자기에게 찾아온 처음 사랑 앞에서 분에 넘치는 화려한 꿈을 꾸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노릇입니다.

 

또한 현수 씨는 현재 아버지와 심한 불화로 집을 나와서 부자지간의 정을 끊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기 때문에 현수 씨의 배경을 보고 사귀는 것은 더 더욱 아닐 것입니다. 혼자 살면서도 조금도 엇나가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현수 씨의 든든한 가슴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우리들 모두는 두 사람의 사랑이 늦가을에 알밤처럼 토실토실 잘 여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현수 씨의 넋두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은주 씨와 공공의 커플로 사귄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데요, 지금까지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거든요? 이런 사랑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처음에는 힘든 가정사 때문에 사랑에 익숙지 못해서 그런가 생각했습니다. 그런 은주 씨의 순수함 앞에 되레 고마운 맘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제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은주 씨가 심한 결벽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나에 대한 은주 씨의 사랑을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나요? 네에?"

 

현수 씨는 취해서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지만 또 다시 은주 씨의 진실되고 맑은 눈망울 앞에 서면 서운했던 마음은 봄볕에 눈 녹듯 스러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현수 씨에게 은주 씨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 보라는 옹색한 위로의 말만이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요. 이번에는 은주 씨가 찾아왔습니다. 온 세상의 술은 죄다 마신 것처럼 붉으스레한 얼굴로 탁자에 얼굴을 파묻고 서럽게 흐느꼈습니다. 흔들리는 그녀의 어깨가 몹시도 시리고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흑흑, 현수 씨가 있죠? 얼마 전부터 손 한 번 잡아보길 그렇게 원하더라구요. 저 또한 현수 씨를 사랑하는데 그의 품에 안겨보고 싶고, 그이의 따스한 손길을 느껴보고 싶지 않겠어요?"

 

"거부할 수 없어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는 그이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어요. 얼마나 따뜻하던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어느 순간 움찔 놀라더니 이내 손을 빼고 말더라구요. 이럴 줄 알았다구요... 흑흑."

 

탁자 위에 내팽개치듯 올려놓은 은주 씨의 손을 보고 나 또한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여자의, 꽃다운 스물 네 살 처녀의 손이 이렇게 거칠 수가 있습니까? 구부러진 짧은 손톱과 뭉텅뭉텅한 굵은 손마디는 남자 손보다도 훨씬 커 보였습니다.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의 손은 차마 여자의 곱고 가녀린 손과는 무관한 듯 싶었습니다.

 

은주 씨는 이렇게 못난 자기의 손을 어느 누구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현수 씨가 깜짝 놀라 엉겁결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도 남았겠습니다. 그러고는 무안해 안절부절못하는 두 연인의 표정이 불 보듯 뻔하였습니다. 그 어색한 시간의 흐름을 어느 누가 막아줄 수 있었을까요?

 

"이제는 끝났어요. 그날 이후로 현수 씨에게서 연락이 없어요.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요. 내가 먼저 연락하고 싶어도 그때 그 놀라던 현수 씨의 표정을 보고 도저히 연락을 하지 못하겠어요. 이젠 어쩌죠? 그렇게 그 사람을 보내야 하나요? ... ..."

그렇게 은주 씨는 울다 지쳐서 한참을 잠들었다 깨더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둠 속에 묻혀 돌아갔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설거지며 빨래, 농사일까지 도맡아 해오던 은주 씨의 손이 성할 날이 있었겠습니까? 손톱 소지를 하며 손을 매끄럽게 가꾸는 것은 어쩌면 은주 씨에게는 심한 사치에 불과했겠죠. 어느 아가씨들처럼 손발톱에 색색의 칠을 하고 탐스럽게 가꾸고 싶겠지만 은주 씨는 그런 허드레 시간보다는 단 일분 일초의 시간이라도 잠을 청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 것만이 그의 가족이 살아가는 방편이었을 테니까요.

 

그녀가 그렇게 가버리고 나자 자꾸만 눈물이 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슬퍼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렇게 든든하던 현수 씨의 짜잔한 마음 씀씀이가 정말 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은주 씨의 힘들고 지친 생활에 닳아져버린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그렇게 매정하게 뿌리치고 가버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과 입맞춤이라도 하듯 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새순을 어루만지는 빗방울을 보며 우울하고 힘겨운 날들을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은주 씨는 몹시도 현수 씨의 따뜻한 눈길이 그리워졌습니다. 금방 그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창밖 풍경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찾아드는 현수 씨 생각을 떨쳐 보려고 애써 허둥거리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사르르 열리며 꽃바구니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노오란 장미꽃 다발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정은주 씨께 꽃 배달 왔습니다."

"뭐라구요? 분명히 정은주 씨가 맞아요?"

", 분명히 맞습니다."

 

노오란 장미꽃 백송이 속에는 편지가 곱게 접혀 들어있었습니다. 은주 씨는 떨리는 손으로 한 겹 한 겹 편지를 펴보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은주 씨!

저 현수입니다. 그 동안 저 많이 미워했죠?

그날 은주 씨의 손을 잡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바로 돌아가신 제 어머니이십니다.

죽도록 고생만 하시다가 편한 날 단 하루도 없이

아무 말없이 저 세상으로 가버린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아버지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오셨는데

바로 지금의 제 새어머니이십니다.

그토록 고생하신 어머니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행복을

새어머니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바보스러웠던 어머니가 죽도록 미웠었습니다.

아마, 집을 뛰쳐나와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그런 방황이었습니다.

왜 제가 은주 씨 손을 잡고 화들짝 빼버린 줄 아십니까?

은주 씨 손을 잡는 순간 어머니 손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까칠까칠하고 비린내로 버무려진 커다란 손 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은주 씨 때문에 제 마음속에서 잠시 비워 버렸던 어머니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너무나 오랜만에 어머니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길게 자라 있는 풀을 뜯다가 어머니의 거칠지만 따스한 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주 씨의 손이 생각났습니다.

은주 씨!

오늘 바보스러웠던 내 생활을 접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저자 : 김해등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