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이야기

사랑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5.
반응형

사랑일기



*** 첫만남 ***


정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정중히 내 이름을 밝혔다.

“전 목이라고 합니다”

“호호호, 그럼 전 파리예요”

“아니…; 모기가 아니라 ‘목’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팔이가 아니라 ‘파리’라니까요. 호호호”

“흐으… 아뇨, 학명 모스키토우의 모기가 아니고 나무 목,목이라니까요!”

“호호호, 저도 학명 플라이, 파리가 아니라 파리라니까요, 호호호”

순간 내 머리속에는 모기들이 앵거리고 눈 앞에는 파리들이 붕붕거렸다.

아버님의 쌈지돈 10,000원을 갈취하고

이따위 날버러지같은 이름을 지어준 미아리 처녀 보살,

평생 처녀로 늙어죽을지어다!

파리채가 있다면 열다발만 묶어서 그 처녀 보살을 찾아가

똥침을 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날 끝까지 놀리는 정현이의 집요함이 미웠다.

에프킬라가 있다면 파리잡는 끈끈이로

그녀의 입에다 세 통만 칭칭 감아놓고 성냥불을 튕기고 싶었다.

정말 난 정현이의 이름이 정팔인줄 알았다.

두어번 만나다 우연히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볼때까진 말이다.

정현이는 지금도 정팔이란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우기고 있다.

모기와 파리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세번째 만남 ***


만나자마자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내 가방을 뺏어 뒤진다.

쓸만한 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갑자기 새초롬해지는 정현이.

이상한 일이다.

두번 만나본 바로 얘는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가 아닌데…….

정현이가 좋아하는 오돌뼈나 순대와 돼지허파도

정현이의 기분을 돌리지 못한다.

뭐라고 말만 하면 톡톡 쏘는게, 내가 아니라 정현이가

오히려 모기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내내 정현이의 투정에 시달렸다.

도대체 뭐에 토라졌는지 모를 일이다.

바래다 주는 길에 정현이 특유의 개깡패같은 심술이 또 나왔다.

자기는 망 봐준대나?

정현이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쉬를 했다.

째리한 배설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별안간 정현이가 쉬로 담벼락에 글자를 써 보란다.

“무슨 글자? 짤리기 전에 빨리 말해. 써 줄께”

“것도 몰라? 「생일 축하해」라고 써 줘야지!”

찔끔!!! 소변이 말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 그랬구나. 생일이었구나. 오늘이 정현이의 생일이었구나.

그러나 이제 세 번째 만남에다 생일이라고 얘기조차 안해놓고

날더러 도대체 어떻게 챙기라는 거야?

일단 왕희지체에 용사비등, 평사낙안의 필체로 담벼락에다 「축생일」을 써주고

골목을 나와 장미 한다발 안겼다.

장미 한 다발에 언제 그랬냐는듯 배시시 웃는 정현이를

집앞까지 모셔 주고 나서 내 수첩 다이어리의 오늘 날짜에다

이렇게 커다랗게 적어 두었다.

「국정 공휴일 - 정현 탄신일」



*** 다섯번째 만남 ***


정현이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지하까페로 나갔다.

내가 과외비 탔다고 둘이서 다정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한 것이다.

잠시후 정현이는 친구(1)를 데리고 나왔다.

“얘, 울 회사 친구야, 우리 커피 사 줘”

커피를 마시다 친구(1)가 퇴근 정리하러 간다면서 갔다.

정현이가 어딘가 삐삐를 치자 잠시후 다른 친구(2)가 왔다.

“얘는 내 입사동기야. 우리 저녁 사 줘”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나자

친구(2)가 미팅이 있다면서 먼저 일어났다.

정현이가 어딘가 삐삐를 치자 잠시후 다른 친구(3)가 왔다.

“얘 옆부서 친구야. 우리 술 사 줘”

셋이서 소주를 먹다말고 친구(3)가 약속이 있다면서 갔다.

정현이가 어딘가 삐삐를 치자

친구(1)이 자기의 남자친구(1-1)과 그 남자의 친구(1-2)를 데리고 오고,

친구(2)가 정현이 입사동기 두명을(2-1)(2-2) 더 데리고 왔고,

잠시후 홀로 나타난 친구(3)은 옆테이블에서 같은과 남자직원이라면서

세명(3-1)(3-2)(3-3)을 더 끌고 왔다.

신이 난 정현이가 나이트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따라나섰지만

정현이가 그 녀석들과 차례로 블루스를 추는 대목에서는

정말 저런 그녀를 좋아하는 나는 총맞았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마지나지 않아 정현이는 비몽사몽에 횡설수설이다.

속상한 나는 그녀를 친구들에게 버려두고 혼자 와버리려고 했으나

그 친하다는 친구들이 그녀 집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거다.

하는수 없이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길.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데…



*** 열한번째 만남 ***


정현이는 오늘이 그날이라며 이날은 술이 잘받는다고 술집부터 찾았다.

낮술로 시작해서 밤술까지 갔지만 모두 몇차를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음날 신림 전철역 화장실에서 나는 5차를 기억했고

정현이는 7차를 기억했다.

그러나 정현이가 기억하는 7차와 내가 기억하는 5차의

교집합을 제외하고 합집합을 만들어 보니 9차가 나왔다.

결론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정현이와 나는 11시경 신림동 순대집을 나와 정현이가

역사화장실에 들어가고 난 정현이의 가방을 매고 밖에서 기다린것 까지였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새벽 세시에 깨어보니 여자화장실안에서 우리 둘은

부둥켜 안고 자고 있었다.

그 새벽에 집에 들어간 정현이가 걱정되어

다음날 사무실로 전화를 해 보았다.

“어제 어떻게 됐어?”

“오빠한테 개처럼 맞았어”

“괜찮아?”

“응, 술 취하니가 하나도 안 아프더라 모. 호호홍”

“!!”



*** 열일곱번째 만남 ***


정현이에게 물었다.

“어제 몇시에 집에 들어 온거야?”

“응? 열 시..”

“거짓말 마”

“아, 열 한 시쯤인가 보다”

“너….! 내가 전화해 본 게 그보다 늦은 시간이야!”

“아 맞아. 집에 와서 TV켜니까 애국가 하더라. 한 시야 한 시”

“….정말…!”

“실은 세 시에…”

“!!! 왜 그렇게 늦었어?”

“한 잔만 더 하자고 자꾸 그래서”

“한 잔? 누구랑?”

“글쎄 그 자식이 자꾸 늦었다는데도 말…아니, 아니 그 년!”

“뭐, 그 자식? 누구야?”

“으응… 아냐. 그냥 미팅에서 만난…아니, 아니 우리 회사 선배!”

“뭐? 미팅?”

“…. 미안해.. 난 애프터 안했는데 주선자가 전화번호를 가르쳐 줘서…”

“으아악! 게다가 애프터였다구?”

“아고아고, 내가 왜 이러지? 나 아직 취해서 헛소리하는거야..”

“끄응…. 삐삐는 왜 꺼놓고 다녀?”

“응? 꺼졌어? 왜 꺼졌지? 이상하다”

그날 난 정현이를 용산으로 끌고가서 삐삐를 하나 더 채웠다.

물론 그 번호는 정현이도 모르고 나만 안다.

그러나 그것도 꺼버리면 소용없다는것을 깨달은것은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밤새 꺼져있는 그녀의 비삐 번호를 눌러대며 몇번이고

전화선에 목을 매버릴까 하는 비감함에 눈물로 베개를 적셔야 했던 것이다.



*** 스물다섯번째 만남 ***


정현이는 날 만나자 마자 백화점으로 끌고 가더니

청바지와 남방을 사준다.

그리고는 스카이라운지로 가서 티본 스테이크를 쳐바른다.

그러더니 미장원으로 끌고가서 내 머리에 갈색 브릿지를 넣어준다.

세종 문화회관에서 자장가 연주회를 봤다.

재즈 까페로 가서 맥주를 마시며 포켓을 쳤다.

물좋은 나이트에 가서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박스 하나를 선물한다.

돌아와 열어보니 내가 갖고 싶어하던 소니FX-5이다.

정현이는 아빠를 졸라 드디어 신용카드를 만들었다고

하루종일 기분을 낸 것이 다.

두달 후, 난 그녀의 카드청구서를 막기 위해 한달치 과외비 받은 것에 더해

주말에는 공사판에서 눈물에 젖은 막국수를 먹으며 벽돌을 져야했다.

그것도 술집에라도 나가겠다며 엉엉 우는 것을 겨우 말려놓고 말이다.

지금도 내 팔뚝에 불끈불끈 솟아오른 근육을 보면

그때 그 눈물의 함바집이 생각난다.

주) 함바집: 건설현장의 가설식당



*** 서른세번째 만남 ***


우연히 길에서 그녀를 봤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서있던 버스 안에서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러자 그녀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수상한 눈빛으로 본다.

엉겹결에 손을 들었지만 그녀도 엉겹결에 나를 부른듯 어쩔줄을 몰라한다.

버스는 떠나고 삐삐를 쳐도 소식이 없다.

더 열 받는 것은 열두시에 들어온 그녀가 자신은 그렇게 날 본 적도 없고

그런 버스도 탄 적이 없다고 박박 우기는 거다.

그러나 내 눈에 전봇대를 박아놓지 않은 이상

내가 다른 여자를 정현이로 착각할 리가 없다.

정현이 니가 아니라면 우리 사랑에 대고 맹세할수 있냐고 물어보자

정현이는 남자가 뭐 그딴일에 맹세를 요구하냐며 생떼를 쓴다.

어떡하겠니? 널… 믿어야지…..

거짓말하는 정현이는 밉지만 그래도 우리 사랑에 거짓 맹세는

하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난 또 그녀에게 사랑을 더해가는거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난 719번 버스는 커녕

720-1(=719)번 버스도 타지 않는다.



*** 마흔 한번째 만남 ***


내 생일이다.

정현이는 일주일전에 내가 그렇게 강조를 해 줬건만 전혀 눈치를 못 채는 모양이다.

아무리 훑어봐도 선물은 보이지 않는다.

만나자마자 투정이다.

“야휴. 다리 아파. 버스 타고 왔더니 쪼~기부터 걸어왔잖아. 야휴, 다리야”

“왜 걸어와? 지하철 바로 코앞이잖아”

“응, 그냥.. 운동 좀 할려고. 어때 좀 날씬해진것 같아?”

그냥 이렇게 딴소리만 해죽해죽하면서 술만 홀랑발랑 마셔댄다.

이제나 저제나 한마디 해주길 기다렸건만 아무 소리도 없다.

마침내 참지 못한 내가 물었다.

“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어머 자기도 알아?”

“응? 아는구나!”

“나, 그날이잖아. 빨간 달 뜬 날. 그래서 오늘은 술이 잘받는다~”

“으씨.. 그거 말고…”

“응? 수요일?”

“이런 그런것 말고 특별한 것 말야”

“글쎄? 하루하루를 특별히 살아야지 뭐 특별한 날이 따로 있어?”

“(부글부글~) 얘기 했잖아, 저번에 만났을 때!”

“??????”

“생일!”

“응? 생일? 아휴 바보. 나, 생일 지났잖아? 버얼써~”

“….너말고 나…..”

“아, 참 오늘이구나. 응,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그게 다야?”

“그럼?”

“선물은?”

“지난번에 소니 사줬잖아”

“그건, 그건, 내가 다 메꿨잖아”

“응, 그럼 담에 해 줄께. 미안. 잊었어”

“으씨.. 지금 해줘!”

“지금 이시간에 어디서 뭘 해줘? 담에 해줄께”

내가 자꾸 선물을 해달라고 하자 토라져 버린 그녀는

또 술로 화풀이를 했고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그녀를 업고 술집을 나와야했다.

내일은 꼭 그녀에게 과일안주에서 참외는 먹지 말라고 해야겠다.

술집 변기에다 토해낸 그녀의 섭취물들은

마치 내가 싫어하는 식혜를 보는듯 했다.

그녀를 바래다주는 택시안에서 우연히 열린 가방사이에

그녀의 다이어리가 눈에 띄었다.

살며시 펼쳐보자 오늘에 동그라미가 열개나 쳐져 있다.

「목이 생일」

그리고 지갑을 열어보자 토큰 두개만이 덩그라니 있었다.

순간 그녀의 월급날이 내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구나. 가난했구나.

그래도 나 보려고 돈 한푼 없이 버스정류장서 걸어왔구나.

난 내 지갑에서 돌아갈 차비만 빼고 돈을 모두 꺼내

그녀의 다이어리에 넣어 주었다

“!!!!!!!”

“이제 집앞이군. 부디 행복해”

“응. 고마워. 그리고 내일 두시에 거기서 만나. 안녕!”

”!!!!!!!!”

그녀는 뽀로롱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도무지 씨알이 안먹히는군. 과연 나를 사랑하는가, 그녀는?

돌아오는 길.

난 그녀에게 발목 잡힌 거야, 난 이제 끝났어, 라고 자조하면서도

그녀 정도라면 내가 발목 잡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정현아. 난 너에게 찍혔다.

앞으로도 여전히 목숨걸고 봉사하마.

오 신이시여, 이게 부디 올바른 결정이길!!!!



*** 예순여덟번째 만남 ***


큰 일이다. 내가 왜 그런짓을 했을까?

모두 친구 상훈이 때문이다.

이녀석이 미팅에 한명이 모자란다고 날 강제로 그곳으로 끌어간 것이다.

4대4였는데 나는 그쪽에서 한명이 늦어지자 맘도 편치 않았기에

그냥 빠져서 나와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는 순간

내 파트너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것이다.

어찌어찌 앉아서 시간을 떼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쳐들어왔다.

은정현이가 말이다.

그것도 멋진 사내하나 꿰차고 말이다.

그러나 열하 미팅중인 나를 목격한 그순간 그녀는 함께온 사내는

안중에도 없는듯 내게 달려들어 멱살을 쥐고 나를 끌어냈다.

나의 외도에 흥분한 그녀는 자신이 선 본 남자랑 함께였다는 것도 까먹은 것이다.

그녀를 달래려고 옮긴 술집에서 그녀는 나같은 놈은 시사매거진 2580에 나오는

여고생 홀딱쇼 시키는 사내들이랑 똑같다고 고래고래 외치며 울고를 반복했다.

자기는 부서회식이라고 깡사기를 치고는 아까 그 놈씨랑 선을 본 주제에

나에겐 지가 사준 청바지를 입고 다른 여자 만났다고 생떼를 쓰는거다.

그 자리에서 지가 청바지를 벗긴다고 난리를 친 것은 약과였다.

그때 그녀가 입고있던 내가 사준 블라우스를 찢어 버린다고 쥐어뜯어

단추가 세개나 떨어졌을 때는, 그래서 그녀의 빵빵한 가슴언저리가 다 드러나는

2580 홀딱쇼 직전까지 갔을 때는 나도 술이 확 깰 정도였다.

겨우겨우 달래서 내 잠바를 걸치고 집앞까지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정말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별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라고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서울엔 별이 안보인다)



*** 일흔두번째 만남 ***


너무나 아름답다. 그녀는.

그녀는 나날이 아름다움을 더해가는데 나는 나날이 삭아가고 있다.

가진거라곤 사용처가 화장실뿐인 딸랑이 두쪽뿐이데

취업도 걱정이고 그녀도 걱정이다.

돈없고 백없고 게다가 학벌도 그저그런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녀를 감당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본 친구들은 다 날 부러워하긴 하긴하지만 나는 속으론 무척 걱정이다.

차인표같은 녀석이 다가와 그녀를 채가지는 않을까?

그런 상상만 해도 ‘별은 내가슴에’를 보는 내 손엔

살의의 주먹이 나도 모르게 쥐어 진다.

늘씬한 몸매에 쪽곧은 다리, 봉긋한 가슴, 크고 깊은 눈.

오똑한 코에 도톰한 입술의 그녀가 도대체 왜 날 찍은걸까?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오늘은 그녀를 앞에 두고 홀로 고독히 술을 마셨다.

그런 무게잡기가 제법 그녀를 무겁게 눌러줬는지

내내 내 눈치를 보던 정현이가 왠일로 내 옆자리로 온다. 으흐흐흐…

그녀의 갈색허벅지가 내 취기로 몽롱한 눈에 근육이 돋게 만든다.

술에 취한척 가만히 손을 그녀의 다리에 얹었다.

왠일인지 그녀는 가만히 술만 마신다. 이게 왠 무지개빤짝떡이냐?

가만히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조금더 힘을 주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묻는다.

“목아”

“으,응?”

“좋아?”

“응? 으으으.. 그렇지 뭐….”

“피식~”

“왜… 웃니?”

“난 불행해! 불감증인가봐. 간지럽지도 않아. 쓰펄!!”

머릿속이 번쩍하면서 술과 분위기가 함께 박살이 난다.

아니, 이게 도대체 여자는 여자 맞아?



*** 여든일곱번째 만남 ***


드디어 첫 출근이다.

겨우겨우 입사한 이 회사를 통해 사회는 나에게 어떤 길을 열어줄 것인가?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서 버스정류장에 갔는데 어랍쇼? 정현이다.

“아니 자기 이게 뭐야.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아니, 여기 왠일이야 이 시간에? 넌 출근 안해?”

“나도 회사 가는 길이야. 일루 와 봐”

그녀는 나의 넥타이를 벗겨 내더니

핸드백에서 세련된 넥타이를 하나 꺼내서 매어 준다.

아, 이 똥꼬째리함이여~

마치 그녀가 내 아내라도 된 듯하다. 주위에 사람들이 우릴 쳐다본다.

부럽지?

그 날 내가 근무하게 된 홍보실에서 인사를 나누고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 환영회식 장소를 그녀에게 알려준 게 실책이었다.

1차를 마치고 2차로 간 단란주점. 왜 그녀가 그곳에 있었을까?

“어머, 목아! 너 여기 왠 일이니?”

..누가 할 소릴…..

“어머 안녕하세요? 전 목이 친구 은정팔, 아니 은정현이라고 해요. 합석해도 되죠?”

날 난 마치 자기가 회식의 주인공인듯 우리 부서 직원들 사이를 누비고

개다리춤을 추어 대며 광란의 밤을 보낸 그녀로 인해 비참할 대로 비참해졌지만

그래도 조금 위안을 삼을수 있었던 것은

화장실구석에서 나보다 더 비참해 하는 우리 룸에 들어온 술집 아가씨들 때문이었다.



*** 아흔아홉번째 만남 ***


계속된 회식으로 일주일의 끝에서야 겨우 그녀와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오붓하게 소주를 한잔씩 한 후 오붓하게 분위기 있는 나이트에 가서

오붓하게 광란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오붓한 분위기도 잠시,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오자

그녀는 떡대 열두엇이랑 한 바탕 시비를 붙고 있는게 아닌가?

그중 하나가 부루스를 신청한 모양인데 우리의 정현이가 그냥 넘어갈쏘냐?

동생 얼르듯 이렇게 한마디 곱게 해 주었는데 그녀석이 듣기 거북했나 보다.

“야, 임마. 조선팔도 다른 사내들이랑 다 춰도 너 같은 곰퉁이 손은 못잡아줘, 끄윽 ~”

그녀와 떡대 열과의 싸움이야 싸움이 될리가 없다.

사내들 체면이 있지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그녀와 붙어봤자

그 녀석들이 얻을거라곤 진술서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가세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그 녀석들의 타겟이 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도 기죽을 수는 없었다. 정현이 앞에서 말이다.

결과만 말하자.

내 얼굴이 사람의 얼굴에 튀어 나와야 할 부분이 들어가고

들어갈 부분이 튀어 나온 상태가 되어서야 상황은 종료됐다.

그러나 그 열명의 사내들도 온전하진 못했다.

정현이가 휘두른 통굽구두에 한명의 코에선 선지국이 흐르고 있었고

또한 그녀가 잡고 당기는 바람에 두녀석의 목엔 넥타이자국이 선명한 혈선을 남겼다.

또한 그녀는 취한중에도 절묘한 키킹으로 한녀석의 뿡알을 부화시켜 버린것이다.

결국 우리팀은 절묘한 팀웍으로 전투를 비김으로 이끈 것이다.

그녀의 화려한 공격과 나의 튼튼한 맷집으로 말이다!

나이트의 어깨들이 간신히 싸움을 말려놓고는

정현이와 나에게 이만 나가라고 했지만 우린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술이 남았기에…

그녀는 나와 블루스를 추며 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말했다.

“목인 전에 내게 왜 키도 작고 가진 것도 없는 널 좋아하냐고 물었지?”

“으..응…”

“그래, 자긴 남들에 비해 가진것은 많지 않아.

하지만 아무리 조금이라도 자기가 가진것은 모두 내게 주기때문이야.

‘주기만 하는 나무’라는 이야기 알지? 자긴 내게 바로 그 나무야…..”

그녀의 고개가 내 어깨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행복…

그 순간 나는 가버렸다. 뭐가 갔냐고?

맛이… 어떻게 갔냐고? 뿅…



*** 백번째 만남 ***


며칠을 고민하다 용기를 냈다. 우선 반지를 하나 샀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몇잔 술로 벌렁이는 가슴을 달랬다.

바로 오늘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서다.

도착한 카페에 그녀가 앉아 있는게 보였다.

난 카운터로 가서 내가 가져간 CD를 틀어 달라고 했다.

“내가 노래 신청했거든. 들어 봐. 이거 완전히 우리 얘기야”

잠을 자다 깨어 네게 전화했지 너는 들어오지 않았어

이 여자가 대체 어디에 간 거야 누굴 만나는거야

이밤에 난 계속 삐삐치고 고민고민하다가

널 믿어야지 어떡하겠니 너를 사랑하는데

(당연하지)

너를 만난후로 나의 몸무게는 점점 줄어만 가고

뚱뚱했던 내가 하루만 다르게 날씬해져만 가네

(뭐가 불만이야?)

친구들이 소개해 준 여자들도 많지만

속 썩이는 널 왜 좋아하는지 내가 총 맞았나봐

처음 널 만났을때 괜찮았던 모습들은 모두 내숭이었어

술도 나보다 엄청 잘마셔 못 하는게 없잖아

오늘도 내가 먼저 술에 취해 버려 필름 끊길 것 같아

나 쓰러지면 어떡할거니 그냥 집에 갈 거지

(뭘 바래)

일년내내 너는 기념일만 모두 기억하고 있다가

특히 니 생일엔 비상이 걸리지 완전 5분대기야

그 이후로 너의 생일이 되면 머리에서 쥐가 나

반응형

댓글